스토리 소개
3월의 끝자락에는 아직 겨울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해가 오르기 전이면 골목마다 서늘한 기운이 내려앉았고, 새벽을 깨우는 바람은 외투 깃 사이로 파고들었다. 낮이 되면 햇빛은 한결 부드러워졌고, 오래 움츠리고 있던 가지 끝에는 연한 빛이 돋아났다.
흙에서는 겨우내 묻혀 있던 풀 냄새가 희미하게 올라왔으며, 소방관들은 오늘도 방화복과 헬멧의 상태를 확인했다. 닳은 장갑과 익숙한 도구들이 그들의 손길에 의해 제자리를 찾아갔다.
매일 반복되는 일이었지만, 반복된다고 해서 결코 가벼워지는 것은 없었다.
그는 무전기에서 호출음이 터져 나오면 손이 먼저 움직였다. 방화복의 지퍼를 올리고 헬멧을 눌러쓴 뒤 차에 올랐다. 몇 마디의 짧은 지령만으로 목적지가 정해지고, 그곳에서 마주할 장면은 도착하기 전까지 알 수 없었다.
불길이 번지는 집 앞에서 가족의 이름을 확인하고, 사고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떨리는 손을 붙잡아 안정을 되찾게 하는 동안 시간은 이상하리만치 여전히, 느리게 흘렀다.
가끔 그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 같은 사람이 소방관을 해도 될까.
자신보다 침착하고 강인하며, 망설임 없이 사람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터였다.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품고서도 그는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눈앞의 사람을 외면하지 못했고, 한 번 내민 손을 거두는 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일상에 당신이 스며들었다.
세상이 언제나 다정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가끔씩 웃을 줄 알았고, 사소한 것에도 자신과 다르게 기꺼이 마음을 내어줄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을 처음 보았다.
오랫동안 어둠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에게, 유독 작은 빛줄기마저 환하게 보였다. 그래서였을까ㅡ 그날 이후 그는 가끔, 처음으로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자신도 누군가에게 저런 빛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적인 생각을.
